| - 이어폰을 귀에 꽃고 다니는 것
그것은 내가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무조건 거부하겠다는 무언의 표현.
눈은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지만 듣는 것. 들리는 것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름답게 지저귀는 새의 소리라 할지라도 소음에 불과하지만 무언가가 자신에게 있어서 잡음, 방해로 여겨질지라도, 무엇이든 잘 먹는 것이 건강의 지름길인 것처럼 여러 잡음들을 수용하려는 포용력과 인내심이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윤택하게 만들 것이다.
듣고 싶은 소리만 취하려는 이기적인 효율성을 추구하는 마음의 이면에는 참고 기다리며 애쓰는 마음없이 열매만을 따려는 조급함이 기다리고있다. 그것이 때로는 우리 인생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을때가 많다.
지하철에서, 때로는 길거리에서. 그리고 어두운 자신의 방 안에서. 귀에 이어폰을 꽃고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
아무 생각이 나지 않더라도. 무언가 좋은 것을 생각하고 있더라도. 무언가 나쁜 것이 기억나게 되더라도. 이어폰을 끼고 있는 동안, 당신의 이면은 환상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이다.
도망치는 것인가. 현실도피인 것인가. 과연 이어폰은 나에게 있어서 무슨 존재인가?
15년 전 에반게리온에서 늘 26번 트랙 - 다 카포(되돌아감)을 반복하는 이카리 신지의 모습과 나의 모습. 그리고 현대 젊은이들의 모습. 그리고 이번에 애인 부모를 살해한 인질범이 귀에 이어폰을 착용하고 연행되는 사진과 댓글을 보고, 문득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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